Eko NUGROHO
기간 | 2013. 10. 1(화) - 11. 3(일)
장소 |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작품 | 회화, 조각, 자수 작업 16점과 벽화 작업
오프닝 | 10월 1일(화), 오후 6시,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아라리오 갤러리는 오는 10월 1일부터 11월 3일까지 인도네시아 출신의 작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 b.1977)의 국내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최근 퐁피두센터에서의 전시, 베니스비엔날레 참여,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진 에코 누그로호는 인도네시아 작가 중 가장 주목해야 하는 작가이다. 이번 개인전은 아라리오 서울 청담 갤러리에서 소개되며, 조각과 회화, 자수 작업과 화려한 대형 벽화작업이 함께 선보인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오는 10월 1일부터 11월 3일까지 인도네시아 출신의 작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 b.1977)의 국내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최근 퐁피두센터에서의 전시, 베니스비엔날레 참여,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진 에코 누그로호는 인도네시아 작가 중 가장 주목해야 하는 작가이다. 이번 개인전은 아라리오 서울 청담 갤러리에서 소개되며, 조각과 회화, 자수 작업과 화려한 대형 벽화작업이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아라리오의 전시에서 에코 누그로호는 특유의 강하면서도 유려한 선들이 강조된 흑백 페인팅들과 자수, 인물형상의 조각들이 전시장 공간을 가득 채우는 컬러풀한 대형 벽화와 함께 선보인다.
회화들은 모두 알 수 없는 독특한 인물의 초상화로 각각의 작품들은 모두 강하면서도 유려한 선들로 이루어진 인물들과 그 인물들의 특징을 설명하는 텍스트들로 이루어졌다. 텍스트들은 대개 두세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구절로, 이들은 모두 삶의 조건을 결정짓는 사회나 정치와 같은 인간 주변의 환경과 시스템을 은유한다. 에코 누그로호는 1990년대 말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의 몰락 이후 떠오르고 있는 사회 정치적인 문제를 반영한 작업으로 알려졌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순수하고 신선한 시각을 반영한 그의 작품은 소수의 개성보다 다수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였다. 30년이 넘는 독재 시대 동안 억압당해왔던 역사를 가진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다수에 속하지 않는 소수에게 민주주의는 새로운 희망이었고, 작가는 그 시점에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사회 속에서 통제되는 개성과 인간의 위선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작가는 이러한 우려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이 점점 더 많이 어려워져 가는 것 같다. 사회는 다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 개개인이 어느 날에는 박물관에 유리 전시장 안에 전시품이 되어 버릴 것 같아 두렵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통해 비판의 날을 세우기 보다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괴상하고 모순적인 대사를 말 풍선을 사용하여 회화에 등장시킨다. 만화와 낙서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아이콘들은 대담하고 때로는 역동적으로 생명력이 넘치게 표현 되어 있다. 하지만 마스크, 헬멧과 같은 도구의 등장은 위장 혹은 은폐의 개념을 상기 시키며 인간의 본성의 역기능에 대해서 강조한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이미지가 베일에 쌓인 이슬람 여성과 관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이 마스크의 의미는 사회에 순응하기 위해 인간이 자신들을 숨겨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나는 인간에게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외면의 모습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내 캐릭터에게 후드나 마스크를 그들의 머리에 씌워 얼굴을 숨기게 한다. 이런 머리에 쓰여지는 장치들은 정체성의 은폐, 혹은 다른 정체성의 암시를 동시에 상징하게 한다” 이러한 작가의 통찰은 작품에서는 만화 속의 유머러스한 표현과 흡사하게 나타난다.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만화 속에 등장하는 로봇이나 특정 캐릭터와 비슷하여 언뜻 검고 두꺼운 선으로 표현된 이들은 종종 70-8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아트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킨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 미술 학교에 가기 위해 할머니의 쌀 가게에서 일했고, 방학 때는 시장에서 행상으로 기념품을 팔러 다녔던 에코 누그로호가 지역 미술계에 입문할 당시인 1990년대 말은 인도네시아의 현대 미술 역사에 가장 치열하고 흥미로운 시기였다. 표현의 자유가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으며, 미술계에게 이 자유의 시기는, 무엇이든지 그리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욕야카르타같은 도시들은 역동적인 표현의 중심이 되었으며, 예술가들이 새롭게 쟁취한 자유를 즐기고, 실험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도전의 중심이 되었다.. 혁명 이후 예술계의 움직임은 당시 20대의 젊은 화가였던 그에게 자신의 작업 접근 방식과 감각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욕야카르타를 통해서 작업의 영감을 받고, 캔버스로 대담하게 활용하였다. 고도의 시각화로 완성된 벽화 프로젝트에서 페인팅, 그림, 책,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자수, 조각, 그리고 최근에는 자신의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예술 와양 쿠릿(wayang kulit, 그림자 인형극)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에코 누그로호의 초기 작품들에는 벽화, 그리고 수제 스티커, 자수 배지 등의 혼합 매체 설치와 그림이 있으며 이 작품들은 도심의 벽에 설치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에코 누그로호: 언어적 시각적 저항(Eko Nugroho: Lingustic and Visual Transgression)>이라는 에세이에서 인도네시아 큐레이터 및 저자 에닌 수프리얀토(Enin Supriyanto)는 “에코에게 캔버스는 벽이고, 벽이 캔버스다. 만화책의 그림들은 비디오 속 장면들이 되고, 만화책의 그림들이 자수, 카펫이 되며 만화 속 주인공들은 조형물이 된다”라고 하였다. 시공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배경을 무대로 여러 가지 상징적인 요소를 덧댄 캐릭터들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요컨대 에코 누그로호의 작품은 인도네시아의 이전 시대에 이루어진(여전히 진행중인) 정치적 격변과 사회와 경제의 발전, 해외 문화의 유입과 국내 문화의 혼합 등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