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 KIM: Who Can Say What?
아라리오 갤러리에서는 씨킴 Ci Kim의 개인전 을 개최한다. 7월 14일부터 8월 21일까지는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7월 23일부터 8월 21일까지는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2009년 개인전 이후 작업한 씨킴의 신작 회화 20여 점과 사진 및 설치 작업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이 함께 선보인다.
기업가, 현대미술 컬렉터, 갤러리 오너로서 30년이 넘게 인생의 기반을 닦아 온 씨킴은 10여 년 전부터 아티스트로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혼성적 정체성 속에서 ‘자아실현’과 ‘자기이해’를 위한 개인적 탐색 과정이 그를 둘러싼 문화 사회적 구조들과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다양한 상호관계는 씨킴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 그는 자신이 새롭게 설정한 꿈인 ‘작가되기’에서 그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 이미 구축된 이미지들에 도전하며 페인팅, 사진, 대형 조각과 설치 등 매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왔다
전시 제목 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2007년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며30년 방송 인생을 접어야 했던 미국의 저명한 라디오 디제이 돈 아이머스(Don Imus)를 표지에 담은 타임지는 그의 입에 “Who Can Say What?” 이라는 메모를 붙여 놓았고, 씨킴은 그 이미지를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거대한 캔버스에 다시 재현했다. 그에게는 아마도 “누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구, 그리고 이 특정 사건으로부터 불거진 ‘표현의 자유’와 ‘acceptable talk (수용될 수 있는 범위의 이야기)’라는 개념이 자신이 끊임없이 예술이라는 권위에 도전하며 부딪혔던 질문, 금 긋기와 편가르기가 팽배한 사회의 편견들에 저항하며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과 유사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말할 수 있는가/없는가? (말할 수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그 (한계를 결정하는) 선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실상 무엇이든 가능할 것처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대에 모든 미술가들이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구조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씨킴은 작가로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거울 이미지들을 다양한 미디어와 문화역사 속에서 찾아내곤 한다. 예술가의 상징이 된 고뇌하는 고흐의 초상, 시대의 반항아 천재시인 이상의 초상, 전설적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리고 시대의 고독을 희극으로 풀어낸 채플린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작가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정성스레 옮기고, 이미지들을 다시 물감, 파스텔, 문드러진 토마토, 녹슨 철가루 등으로 뒤덮었다. 이 독특한 평면 작업들은 2007년 그의 개인전에서 이미 시작된 것으로, 지난 몇 년간 씨킴 만의 독자적 회화 언어로 발전해 왔다. 흥건히 뿌려진 토마토와 철가루는 캔버스의 이미지들을 지우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색과 형태로 변형되어, 파괴/변화/생성의 흔적들과 시간성의 일루전을 화면에 구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육중한 텍스처와 보일 듯 말 듯 추상화된 이미지는 관람자로 하여금 좀 더 적극적인 ‘응시’를 유도하며 차용된 이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작품의 소재들이 현대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 사회적 이슈들로 확장되면서 씨킴의 작품은 좀 더 복합적인 읽기를 가능케 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최근작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현대인의 시각환경의 일부가 된 각종 미디어 속 이미지들을 다룬다. 그의 작품에서 현대인들이 늘상 잡지와 신문에서 접하게 되는 전쟁, 기아, 난민의 이미지들은 거대한 캔버스 위에 정성스레 재현되고, 부식과 마모로 얼룩진 역동적인 외피를 입게 된다. 캔버스에 뿌려진 철가루에 끊임없이 물을 뿌려 붉은 녹을 만들고 그 녹을 사포질로 연마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철가루는 작가 개인의 세계관과 미디어의 메시지를 물리적으로 매개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또한 이렇게 가려지고 희미해진 미디어 이미지에 특정한 오브제가 첨가되면서 아이러니한 의미의 교차지점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티 지진으로 부상당한 아이에게 링겔을 꽂아주거나, 무가베(Mugabe)의 횡포로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의 옷깃에 사랑의 열매 배지를 달아주고, 구호품을 기다리며 항구로 모여든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의 모습 앞에 정지(STOP) 표지판을 세워놓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제스처는 아이러니하게 예술적 언급이 지닐 수 밖에 없는 한계 지점과 맞물리며 오늘날 우리의 삶이 무겁지만 익숙한 이 사건들에 얼마만큼 연계되어 있는지 반성하게 한다. 미디어가 집중하고 기록한 시간의 조각들, 그러나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며 쉽사리 잊혀져 가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다시금 다양한 방식으로 명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의 회화작품들과 함께 전시될 사진들 또한 다양한 TV 미디어 속 이미지들을 담아낸다. 작가에 의해 순간적으로 포착된 화면 속 이미지들은 사진의 차갑고 매끈한 표면 속에 담기면서 구체적 사건의 문맥이 단절된 채 아름다운 추상적 이미지들로 남는다. 이는 육중한 물성과 오브제까지 첨가되며 주제의 무거움을 담아내는 그의 회화작업과 아이러니한 충돌과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씨킴의 작품은 미디어의 구조, 그 구조를 자신의 태도과 연결지어 해석하는 그만의 방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조화가 이미지로 승화되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그 의미를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독특하고 복합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씨킴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