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은 5월 27일부터 6월 27일까지 윤희섭, 최원정의 드로잉 설치 전을 선보인다.
회화, 조각 등의 장르와 비교하여 드로잉만의 특장이라면 경제적이고 한정적인 방식과 사용매체이다. 드로잉 속에 담긴 작가의 고유한 선과 색이 작가의 감성과 직관을 명확히 드러내며, 작가의 자유로운 육체적 움직임과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렇듯 작가와 작품과의 관계를 더욱 솔직하게 드러내는 드로잉의 특징은 과거에 작품을 위한 스케치나 습작으로만 여겨지던 것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에서는 회화, 조각과 같은 기존 장르들을 포괄하거나 넘어서는 창작 형태로 인식하게 한다. 드로잉은 작가의 일상 속에서 연일 일어나는 창작행위이며, 그 자체로 다른 작품활동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에 작가 개인의 성향을 중시하고, 일상 속에서의 예술, 혹은 일상과 예술의 합치를 이루며 컨셉과 창작과정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개념을 드러내는데 매우 적절하다.
윤희섭(1976)은 마일러(Mylor) 판이나 종이에 마스킹 테이프, 펜 등을 이용해 거대한 사이즈의 월 드로잉부터 작은 크기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선이 중심이 되는 작업을 해왔다. 이와 함께 세심하게 오린 불투명한 마일러 판들을 겹쳐서 여러 번 그어진 선들과 같은 효과를 낸 작품들도 전시된다. 윤희섭은 <아버지의 지하실>, <중고품 가게>와 같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주변에 꼭 필요하지만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놓여있는 공간의 모습을 테이프를 수 차례 부착하거나 펜 등으로 자유롭고 강한 선을 여러 번 그어서 묘사하였다. 그가 긋는 선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확한 묘사를 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여러 번 선들을 중첩시켜야 한다. 선들 각각으로는 모두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그어진 것이지만 매번 다른 선들이 생겨난다. 우리의 정확한 인식이라는 것이 시간과 장소, 혹은 방식에 의해 얼마나 가변적인 것인지 수없이 중첩된 선들이 보여준다.
최원정(1976)은 플렉시글라스(Plexiglass)나 얇은 플라스틱 판에 핫글루(Hot Glue)로 마치 선을 그리듯 형상을 그린 다음 판을 오려낸 후 공중에 매달아 공간에 설치한다. 핫글루와 플라스틱 판, 플라스틱을 매단 선이 조명에 비춰지면서 밝게 빛나는 투명한 면과 선들, 벽과 바닥에 드리우는 그림자들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핫글루로 묘사한 물고기 화석, 깃털, 나비, 공룡 등에 작가 자신을 이입한다. 다양한 생명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모양을 변이하는 과정을 통해 태어나고 자란 곳과 떨어진 곳에서 수년간 작가로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최근작에서는 값싼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잡지들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묘사를 기반으로 불확실한 몽타주를 만든다.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단어들이 묘사하는 개별 인물들의 특징을 드로잉으로 다시 구현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개별 인물들의 정체성이 가지는 개성과 보편성의 차이와 합치, 실제 모습과 단어가 묘사하는 허구와의 차이와 합치 등을 독특한 드로잉을 통해서 보여준다.
1976년 생인 두 작가는 미국에서 남다른 활동을 통해 주목 받고 있다. 윤희섭은 중앙대학교 졸업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시립대학교(City University of New York)를 졸업하였다. 최근 뉴욕 보세 파시아(Bose Pacia)에서 2인전을 통해 강한 선이 이루는 큰 규모의 드로잉으로 주목 받았으며 올해 호주에서 열리는 대형 단체전인 Colliding Island전을 앞두고 있다. 최원정은 홍익대학교 졸업 후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chool of Visual Arts)를 졸업하였다. 투명한 빛의 발산과 어두운 그림자의 형태가 이루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뉴욕의 관람객들을 압도하였고, 휘트니 미술관, 아모리쇼, 미술전문 에이전트의 블레어 클락등 뉴욕의 주요 컬렉터들이 그녀를 주목하고 있다. 또한, 뉴욕 시장이자 미디어 재벌인 블룸버그가 후원하는 패싱 스루(Passing through)전에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