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파프): FINAL CUT
새로운 형식의 공존을 시도하는 본 전시는 완성을 앞둔 마지막 선택이자 새로운 단계로의 시작점이기도 한, 즉 끝이면서 시작인, 그래서 끝의 불안함과 시작의 설렘이 공존하는 상태에 있음을 고백한다. 완성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순간을 암시하는 ‘파이널 컷’을 전시 타이틀로 명명한 이유도 바로 이런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끝과 시작의 영원한 맞물림 상태와 공존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전시 《FINAL CUT 파이널 컷》은 패션 브랜드 "POST ARCHIVE FACTION (PAF)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파프)”(이하, ‘파프’)가 예술과 패션의 경계선에서 실현했던 여러 시도들 중 그들의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특정 태도를 패션이 아닌 미술의 공간 속에서 구현해보려는 시도이다. 2018년 론칭한 남성복 브랜드 ‘파프’는 패턴의 과감한 해체와 전위적인 실험을 근간으로 하는 브랜드다. 더 이상 예술, 패션, 가구, 디자인 등 경계 나누기가 의미 없어지는 동시대에 예술적 실험을 자신들의 브랜드 구현을 위한 철학적 토대로 삼고 있는 ‘파프’의 여러 시도는 경계를 둘러싼 다양한 의문들을 가시화하고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전시는 크게 두 개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지하 공간에서는 ‘파프’의 예술적 토대들 중에서도 '패턴'을 개념화하는 데 집중한다. 패턴은 옷의 기초가 되는 가장 기본 형태, 즉 완성본이 실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시작이면서 디자인이 최종 확정되는 단계다. 이는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경계인데, ‘파프'의 아트 디렉터 에리카 콕스는 지하 공간에 옷에서 파생된 평면 패턴들을 확장해 만든 입체적 오브제, 즉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버린 패턴들을 제시함으로써 중간 상태에서의 불확정적인 긴장감을 표출한다. “패턴으로 인식되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는 ‘파프’의 철학을 반영하듯 패턴의 해체와 새 패턴의 동시적 등장을 평면과 입체를 오가며 흥미롭게 풀어낸다. 공간적 측면에서는 빛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각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일반적인 전시 관람 방식을 비틀어 빛이 바닥에서 위로 솟구치는 공간과 그 속에서 수평적으로 펼쳐진 조각들의 풍경을 연출했다. 관람객들은 빛이 역방향으로 흐르는 공간을 부유하듯 직접 걸어 다니며, 빛이 만들어내는 지배적 지각 패턴을 깨버리자 비로소 가능해진 변칙적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2층에서의 '패턴'은 지하층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하 층에서의 ‘패턴’이 시각적 대상으로서의 접근이었다면, 2층에서는 행위와 실천으로서의 '패턴'으로 전환된다. 행위의 측면에서 ‘패턴’은 특정한 행동 양식을 일컫는 데, 패션 매장과 전시 공간의 묘한 결합이 자연스럽게 관람객의 행동 ‘패턴’에 대한 재고를 유발한다. 전시장에는 옷과 작품이 함께 진열된 구조물이 존재하고,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해선 스스로 여닫는 퍼포먼스적 행위가 유도되면서 기존의 수동적 감상에서 적극적 참여로의 전환도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지하에서 2층으로 연결되며 펼쳐지는 ‘파프’의 예술적 실험 공간은 그 공간의 원 거주자들인 미술작가들 - 김병호, 권오상, 김인배, 이지현, 노상호, 돈선필, 심래정, 장종완의 개입으로 더욱 복잡해진다. 이들 작가들은 생소한 전시 방식 속에서 스스로의 패를 공개하듯 자신들의 패턴을 공개하고, 이는 파프의 구조물 속에서 조금씩 어긋난 형태로 구현된다. 이 모든 과정은 작가에게도, 관람객들에게도 예측하지 못했던 즐거운 자극을 제공한다. 전시 《FINAL CUT 파이널 컷》은 끊임없이 무언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공존의 순간에 발생 가능한 변칙과 그로 인한 즐거움을 극대화해 제시하고자 했으며, 지속적으로 각자의 패턴을 깨고 새로운 패턴의 인식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산되는 시지각적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해보기에 충분한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