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윤: 혀와 손톱
구지윤(b.1982) 작가의 신작 회화들은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 특히 끊임없이 사라지거나 변화하는 도시적 시간이 갖는 특이성에 대한 사색이 응축된 심리적 풍경을 묘사한다. 작가의 직전 작업들이 시작도 끝도 아닌 중간 상태인 공사장을 대상으로 내장이 드러난 도시 속에 은밀히 내재된 불안이나 공허가 야기하는 미묘한 심리들을 공감각적으로 발현했다면, 전시 <혀와 손톱>에서는 도시를 대하는 기존의 작가적 시선에 시간에 대한 사유를 더한 18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구지윤 작가는 도시와 건물을 시간이라는 큰 구조에 속해있는 생물학적 유기체와 동일시한다. 서울과 근교의 건물들을 유심히 보고 다니며 오래되어 부스러지고 색이 바랜 건물들을 의인화하는 작가는, 끊임없는 파괴와 생성의 힘으로 유지되는 도시의 잔혹한 순리 속에서 언젠가는 기억 속에서만 남고 사라질 건물들의 운명에 처연함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내가 바라보는 도시의 인상과 함께 계속해서 바뀌는 것들에 대한 감정들이 구지윤 작가의 작업에선 중요하다. 전시 제목인 <혀와 손톱>에서 혀가 암시하는 부드럽고 미끌거리는 느낌과 딱딱하고 건조한 손톱의 대비는 도시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심리를 함축적으로 반영한다. 작가에게 이 두 대상은 모두 도시와 연결되는 데, 손톱은 끊임없이 자라나지만 지속적으로 새 손톱을 위해 잘려나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의 대상으로, 즉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결국엔 부서져 나갈 수 밖에 없는 도시 속 건물들과 매우 닮아있다. 반면 이 딱딱하고 건조한 것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혀는 부드럽고 미끌거리는 몸통을 이끌면서 도시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어떤 대상들로서 작동한다. 흥미롭게도 작가에게 이 둘은 모두 도시의 욕망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처럼 시간에 대한 사유 속에서 포착한 도시의 욕망과 기억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풍경을 구체적 묘사나 균형 잡힌 구성이 아닌 캔버스 위에 색채와 선 등의 조형 요소들이 서로 뒤엉킨 추상 회화로 귀결시킨다. 특히 화면들에서 은밀하게 포착되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과의 대비, 날카롭고 거친 선과 두텁고 부드러운 선이 혼재하는 붓질, 탁한 색과 밝은 색이 뒤엉키면서 만들어내는 생경함 등 대비되는 것들의 공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미적 감흥에서 구지윤 작가 회화만의 독특한 묘미들을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도시의 욕망을 혀와 손톱에 비유하며 분석하는 작가의 시선이 주제적 측면에서만 머물지 않고 조형적 제스처와 그 결을 유사하게 일치시켜 나가는 작가적 태도도 추상 회화를 연구하는 구지윤 작가의 작품에서 유심히 살펴 볼 지점이다.
구지윤 작가는 2018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서울, 한국), 2016년 사루비아 다방(서울, 한국)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참여했던 주요 그룹전으로는 2019년 “아마도 멋진 곳이겠지요(두산갤러리, 서울, 한국), 2018년 “올오버”(하이트컬렉션, 서울, 한국), “Go Through-and then”(자하미술관, 서울, 한국), 2017년 “예술만큼 추한”(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 한국), 2014년 “오늘의 살롱”(커먼센터, 서울, 한국), 2010년 “Subtle Anxiety”(두산갤러리, 뉴욕, 미국)등이 있다. 2014년 ‘에트로 미술상’을 수상하였으며, 2013년에는 한국은행 주관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아라리오 뮤지엄(한국)을 포함하여 한국은행(한국), 커민스 스테이션(미국)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