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산: 폭풍이 온다
안지산(b.1979) 작가가 그려내는 대상들은 대부분 작가가 부여하는 특정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의해 잠식된 불안은 여러 대상들의 뒤에 숨어있다가 슬금슬금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이 불안과 온전하게 마주할 때가 바로 안지산 작가의 회화를 제대로 즐기는 순간일 것이다. 전시 <폭풍이 온다>에서 작가가 부여하는 특수한 상황은 ‘폭풍’이다. 조금씩 다가오는 폭풍에 대한 예감, 혹은 이미 폭풍 속으로 들어가 버린 상황이 작가에 의해 전제되었고, 그에 대한 인간의 잠재적 불안을 암시하는 기제는 구름과 돌산, 그리고 마리라는 인물이 맡았다. 그의 작업 전반에서 드러나는 표현 대상보다 그것이 처한 특정 상황에 더욱 집중하고 그 감정을 화폭으로 옮기는 방식은 유지되었지만, 기존 작품이 밀폐성이 부각된 실내 공간인 경우가 많았다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신작들은 감정을 실은 외부 풍경과 인물 묘사에 크게 기대고 있다.
풍경 중 작가는 특별히 구름에 집중하는데, 이는 그가 17세기 네덜란드 화풍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름 그리기에 집착했던 당대 화가들의 작가적 욕망을 좇는 안지산이라는 화가의 맹목적 집착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런 까닭에 구름은 화가의 욕망이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좇아야 하는 불안을 동시에 담고 있는 대상이 된다. 구름의 변화무쌍한 형태와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에 대한 여러 표현적 변주들은 이번 전시에 부여된 ‘폭풍’이라는 상황 속에 삼켜진 인간의 태생적 불안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관찰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구름과 불안한 대상으로서의 구름을 영리하게 중첩시키며 최종적으로는 화가로서의 욕망과 인간의 불안을 모두 표현해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폭풍이라는 상황은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선 모든 가능한 인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 등을 대신함을 알 수 있다. 반면 구름과 함께 주로 다뤄진 돌산은 구름과의 대척점에서 땅 속에 발을 파묻은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암시한다. 이 변하지 않는 돌산 위에서는 인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은유하는 불안한 존재로서의 새, 지팡이, 흔적만 남은 늑대 등이 사라지고 나타남을 반복하며 휘몰아치는 상황 속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구름, 돌산과 함께 본 전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리라는 인물들의 초상, 특히 그 애처로운 눈빛은 폭풍을 마주하는 인간의 실존적 슬픔과 두려움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며 욕망과 불안에 대한 본 전시를 설명하는 친절한 안내자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안지산은 2021년 아라리오갤러리(한국), 2020년 Galerie Bart(네덜란드), 2018년 조현갤러리(한국), 2017년 자하미술관(한국), 2016년 합정지구(한국), 2015년 그리고 2014년 Galerie Bart(네덜란드)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2020년 경기도미술관(한국), 국립현대미술관(한국), 2019년 사비나미술관(한국), 2018년 Kunsthalle Münster(독일), 2017년 대구미술관(한국), 2016년 아르코미술관(한국), Gallery LUMC(네덜란드)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2013-2014년 라익스 아카데미 레지던시(네덜란드)에 참여하였으며 2014년 Buning Brongers Prijzen(네덜란드)에서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