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시간: 이호인, 왕선정, 연진영: 아라리오갤러리 임시 전시 공간

9 June - 6 August 2022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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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단정짓기 힘든 지점이나 순간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여러 명확한 정의들이 끊임없이 미끄러지거나 도망가는 지점들이 있는데, 이 불확정적인 순간들은 하루 한 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저녁의 시간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낮이 저문 후 밤이 되기 전까지를 의미하는 저녁의 시간은 도대체 언제 정확히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따지는 모든 이들의 답변이 상이할 정도로 그 경계가 부정확하고 불명확한 시간이자 상태이다. 이 시간은 완전한 밝음과 완전한 어둠 사이의 경계선에서 불완전한 상태로 최종이 되기 전까지 지속해서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움직이는 바로 그 순간이다. 전시 <저녁의 시간>은 이런 불확정적인 경계를 닮은 3인의 작가들, 이호인, 왕선정, 그리고 연진영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들의 작품은 저녁의 시간과도 같은 불분명한 상태를 포착하고 표현하거나 완성과 미완 사이의 애매모호한 지점이나 불안함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 작가들을 통해 저녁의 애매모호한 시간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이미 과거에 확립된 완결된 것에 의문을 갖고 변화의 과정과 불확정성의 경계 속에서 새로운 가치들을 찾아보는 여러 시도들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호인(b.1980)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 회화들은 밤 공기 가득한 추상화된 도시 풍경들이다. 혜화동, 해운대 등 특정 지역의 밤 풍경을 완성하기 위해 작가는 해당 도시의 형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도시가 품고 있는 여러 감정들을 흡수하고 시각화하는 데 주력했다. 특정 형태가 아닌 작가 자신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는 도시의 밤 풍경에서 특히 빛에 주목했고, 빛의 강약 표현이나 궤적을 표현하며 도시의 밤에서 포착한 여러 감정들이 응축된 이호인 작가만의 밤 풍경을 완성해냈다.  작가의 전작들처럼 여전히 풍경의 윤곽을 명확하게 표현해내기를 끊임없이 주저하고 고민하며 유예했을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달되는데, 그와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꽤 단호하게 쌓아 올린 씩씩한 붓질의 움직임에서 포착되는 양가적 감정들의 공존이 이번 신작들에서는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호인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예술사, 전문사 졸업 후 두산갤러리 뉴욕(2018, 뉴욕), 갤러리현대 16번지(2012,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뮤지엄헤드(2021,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2019, 청주), 삼성미술관 리움(아트스펙트럼 2016, 서울)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6년에는 제7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했다.

 

   왕선정(b.1990) 작가는 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인간에게 금지된 규율들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기저에 깔고, 크게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선한 삶을 향한 믿음 혹은 개인의 즐거움을 통한 행복 추구라고하는 유사한 목표인 듯 하지만 결코 서로 맞닿을 수 없는 두 삶의 방식들에 대한 질문들을 회화 작업으로 풀어낸다. 본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성서에서 규정한 일곱 죄악을 행하는 나약한 인간들을 지옥도로 형상화해서 드러내며, 종교적으로 금기시되고 있지만 동시에 그 무엇보다 삶의 기쁨이기도 한 행위들을 통해 인간의 순수한 쾌락들을 표현한다. 이때 표현 대상이나 서사보다 강하게 시선을 잡아 끄는 지점은 바로 작가만의 나른하면서도 화려한 색 선정과 그 대비적 표현에 있다. 작가는 규율과 쾌락이라는 두 대척점에서 서 있는 양립불가한 욕망들을 모호하면서 나른한 색의 조합으로 버무려내며 명료한 답변 대신 끊임없이 정답을 유예해야 하고 불확정적일 수 밖에 없는 입장들을 표현한다. 왕선정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예술사, 전문사 졸업 후 유아트스페이스(2021, 서울), 창작공간문화 여인숙(2017, 군산)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서울대학교미술관(2022,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2019, 청주), 보안여관(2017, 서울), 하이트컬렉션(2015, 서울)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연진영(b.1993) 작가는 산업용 알루미늄 파이프나 폐기된 부품 등을 이용해서 만든 테이블, 의자, 조명, 농구 골대 등의 형상을 한 조각 작품들을 선보인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연진영 작가의 작품은 일반적인 조각 재료보다는 산업용 기자재나 폐기물에서 시작해서 가구 디자인을 우회한 후에 조각 작품으로 귀결된다. 과거 패딩, 산업용 앵글, 덕트, 텐트 등의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해 재료가 통상적으로 수행해오던 역할을 배제한 후 해당 재료의 물성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온 작가는 본 전시에서도 동일한 방법론을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의 묘미는 비단 새로운 해석의 기대감 뿐 아니라 기존에 부여된 의미를 재발견하게 되는 묘미, 즉 새로운 시도와 고유의 물성이 가졌던 특수성 사이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중간 지대, 마치 저녁의 시간에 발생하는 모호하고 불안정한 다중의 경계선들을 미적으로 형상화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연진영 작가는 계원예술대학교에서 리빙 디자인 전공 후 DDP(영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2019, 서울), 문화비축기지(글로벌 위크 2020, 서울), 대림미술관(2021, 서울), 2021 밀라노 디자인위크(밀라노, 마이애미), 컬렉터블 디자인 박람회 2022(브뤼셀, 벨기에), 소다미술관(2022, 화성) 등에서 전시하였고, 최근에는 코오롱스포츠와 협업하여 솟솟리버스 제주점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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