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Gui KIM: Voice of Silence
프랑스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작가 김순기(b. 1946)는 한국 현대 실험 미술의 선구자로서 1960 년대 후반부터 철학, 예술, 테크놀로지가 어우러지는 실험적 작업을 비디오, 멀티미디어, 사운드,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간, 빛,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김순기의 철학과 미학이 담긴 신작 설치, 멀티미디어 영상 작업과 바늘구멍 카메라로 담은 '바보사진'들이 갤러리 지하 1층, 지상 1층과 3층에서 소개된다.
전시의 시작점인 지하 1층에서는 설치작품 <깡통 통신>(2023)이 소개된다.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자본의 확산과 인터넷을 통한 사회적 구조 변화를 다루는 작품들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당시 이라크 전쟁 시기에 세계가 미국에서 내보내는 뉴스만을 믿는 상황에서 말의 전달과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한 고민을 1987년 - 1992년 사이 제작된 다수의 드로잉들에서 표현했다. 이번에 전시장에 거대하게 설치된 작품은 그 당시 제작된 드로잉들을 바탕으로 처음 구현된 설치 작품으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왜곡되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짚어보고자 한다. 깡통과 깡통 사이를 줄로 연결하는 가장 원시적인 소통 방식과 소리의 전달을 보면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자주 발생되는 왜곡된 소통으로 인한 갈등과 소리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1층에서는 김순기의 90년대 영상 작품을 새롭게 재해석, 확장한 신작 영상 작품이 소개된다. <주식정원 – 템플>(2023)은 주식 시세 전광판과 새벽 타종이 울리는 절을 비추는 작품이다. 33회 울리는 타종은 불교철학의 우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동양 철학에서의 열림과 절대적 시간을 의미한다. 명상의 소리와 자본주의의 주식 시세 숫자들은 서로 뒤섞이며 무형적 세계의 자본주의적 가치에 의존하는 현대인들의 삶과 그 내면을 극대화시킨다. 마지막으로 3층에서는 사진 작품을 선보인다. 김순기의 사유는 비움, 열림 등 동양 철학에 기반해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탐구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두는 것을 중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순기의 이러한 사유를 대표하는 <바보 사진> 시리즈가 다수 소개된다. “바보 사진”은 바늘구멍 카메라를 사용해 장시간 빛에 노출해서 자연의 빛을 통과한 주변 사물과 풍경을 담아 90년대 아날로그 프린트에 인화한 사진 작품들이다. 시간과 빛을 이용해 대상을 있는 그대로 가장 자연스럽게 찍기 때문에 특유의 흐릿하고 몽환적인 이미지들이 특징이다. 이 ‘바보 사진’ 시리즈 속 계산되지 않은 시간과 빛의 노출에 의해 있는 그대로, 가장 자연스럽게 포착된 일상의 단면들은 김순기만의 독특한 시선을 보여준다.
김순기는 1946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71년 니스에 위치한 국제예술교류센터 (Centre Artistique de Rencontre International)의 초청작가로 선발되어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액상프로방스, 니스 대학에서 기호학과 미학을 수학한 후, 니스, 마르세유, 디종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김순기는 프랑스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펼쳐왔으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2018),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2016), 아트선재센터(2014), Slought Foundation(2013), 니스현대미술관(1991)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김순기의 예술세계를 조망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게으른 구름>(2019) 이후 최근 독일 ZKM 카를스루에 미디어 아트 센터(2022)와 카네기 인터내셔널 초청 전시(2022-2023)를 개최하였으며, 올해 광주비엔날레(2023)에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