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기: 올인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2023년 5월 24일부터 7월 1일까지 백정기 개인전 <올인원>을 개최한다. 백정기(b. 1981)의 작업은 재료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특정 관심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스스로의 손으로 수행하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시각화해 나가는 작업 방식으로 구축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정기의 다양한 실험들 중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연구, 발전시킨 세 개의 시리즈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 <능동적인 조각> 그리고 <Is of>를 갤러리 지하 1층, 1층, 3층에서 각각 선보인다. 분리된 각 층의 개별 공간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백정기의 작품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주제들인 생성, 소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하 1층에서는 2015년부터 시작되어 지속적으로 변주해온 촛불의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해 병아리가 부활하는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2023)를, 1층에서는 직접 제작한 동상을 송신기로 이용해 사운드를 전파하는 설치 작품 <능동적인 조각>(2023), 그리고 3층에서는 자연에서 획득한 재료로 잉크를 만들어 디지털 사진을 인화하는 (2018~2023) 시리즈가 설악산, 내장산 등의 풍경을 담은 형태로 소개된다. 전시 공간에 맞춰 새롭게 구현된 각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물질에 대한 근원적인 접근을 통해 현 시대의 물질세계를 바라보고 새로운 관점과 확장된 시선을 제시한다.
지하 1층의 설치 작품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는 촛불에 담긴 염원이라는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에너지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제의 물질적인 에너지로 변화시켜나가는 작업이다. 전시장에는 촛불의 작은 열을 이용해서 전기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10개의 촛불 발전기와 1개의 달걀 부화기가 놓인다. 전시장의 전기 콘텐트가 아닌, 이 촛불 발전기를 통한 전기 에너지로 전시기간 동안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과정을 선보이는 작품이다.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는 작동이 가능한 기계 장치와 소원, 성취, 염원이라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다양한 종교적인 장식들이 융합된 형태이다. 과학적인 기술과 장식 예술의 결합을 통해 탄생된 작품은 순환과 재생의 상징을 표현한다.
1층에 설치된 <능동적인 조각>시리즈는 백정기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메모리얼 안테나>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는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전태일, 손기정, 이승복, 정재수, 책 읽는 자매와 오수의견 등 실제로 존재하는 동상들을 3D 스캐닝해 유사한 외형성을 갖추되 상상력을 더해 조금씩 변형된 모습의 동상으로 제작했다. 금속분말캐스팅으로 만들어진 이 기념비적 형식의 동상들을 송신용 안테나로 이용해서 사운드가 있는 하나의 설치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 동상들은 미스터리한 소설을 낭독하는 목소리와 간헐적으로 들리는 첼로 연주를 라디오 전파로 송신하고, 관객들은 갤러리 곳곳에 놓인 라디오를 통해 이 새로운 전자기적 파동과 언어를 듣게 된다. 백정기는 동상을 안테나로 활용하여 잠재된 사운드를 가시화함으로써, 동상의 외형이 가진 의미나 상징 대신 재료의 물질성에 주목하도록 만들어 존재의 의의를 재고하게 만든다.
3층 전시실에서는 백정기의 자연풍경을 담은 신작 사진 작품들이 소개된다. 프로젝트는 백정기가 2011년부터 시작한 사진 작업인데, 사진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백정기만의 실험적인 과정과 사진을 만들어내는 재료의 독특성이 두드러진다. 얼핏 보기에는 색이 바랜 풍경 사진들 같지만, 백정기의 사진들은 사진에 담긴 장소들에서 찾은 단풍잎, 녹차잎 등 자연물로부터 추출된 색소를 이용해서 프린트한 결과물이다. 자연의 성분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백정기는 자연의 본질과 속성, 생성과 소멸과 변화라는 개념들을 시각적인 결과물로 보여준다. 오랫동안 다양한 시리즈로 작업해 온 사진 작품들을 2017년도부터는 보존을 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였고, 그 결과 투명 레진을 이용하여 사진 전체를 앞뒤로 감싸는 함침법을 적용하여 사진은 완성된다. 이러한 시간을 정지시키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을 멈추게 하려는 인간의 개인적인 욕망과 행위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백정기(b. 1981)는 2004년 국민대학교에서 입체 미술을 전공한 후 2008년 영국 글라스고 미술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였다. 2006년부터 2023년까지 대안공간 루프, OCI 미술관 등에서 12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2004년부터 현재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송은아트스페이스, 리움미술관, 백남준 아트센터, 포스코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의 기획전에 다수 참여하였으며,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영국, 이탈리아, 미국, 베네수엘라, 이스라엘,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동하였다. 2012년 송은미술대상, 2019년 김세중 청년조각상, 2023년 홍콩아트센터 IFVA 미디어아트 금상을 수상하였고,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