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킴: 레인보우: Solo Exhibition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는 씨킴(CI KIM, b.1951)의 열일곱 번째 개인전 《레인보우 RAINBOW》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신작 170여 점을 선보인다.
씨킴은 어린 시절 하늘에서 보았던 무지개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비가 그치고 떠오른 태양 뒤로 펼쳐진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예술적 영감의 원천임을 그는 오랜 기간 고백해 왔다. 씨킴의 작업과 삶 전반에 ‘무지개’는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간 ‘무지개’가 ‘꿈’, ‘희망’, ‘아름다움’, ‘예술’ 등의 추상적인 개념의 형태로만 머물렀다면, 최근 작업에서 그는 무지개가 자아내는 다채로운 빛깔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색의 매력에 흠뻑 빠져 각각의 색이 주는 감각과 기쁨을 하나하나 맛보고 있는 듯하다. 씨킴은 매일 아침 빈 캔버스, 바닥의 카펫, 쓰다가 남은 빈 상자 등을 마주하고, 그 위에 색을 얹는다. 때로는 일상의 사물이나 사람을 묘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색을 흘려 보내며 그것의 응집과 확산, 건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갈라짐 등을 관찰하기도 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회화, 조각, 사진, 드로잉들은 씨킴이 빛과 어둠 사이에 피어난 색들의 향연에 매료되어 그 속에서 자신의 회화적 질서를 찾으려 한 수많은 노력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전시장 4층에 전시된 비 오는 날 풍경 사진들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작가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오랜 시간 거리를 다니며 촬영한 결과물이다. 잿빛 하늘 아래로 펼쳐진 제주 시골길 풍경은 무지개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쓸쓸하다. 그것은 천둥, 번개가 치고 고통의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무지개가 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 사이로 기필코 피어나고야 마는 무지개는 거친 삶의 풍파에 맞서는 노력의 열매일 것이다. 씨킴의 작가적 태도는 분명 이와 맞닿아있다. 씨킴의 작업에 근간이 되는 상반된 두 단어가 ‘꿈’과 ‘고통’이기 때문이다. 씨킴은 무지개를 보면서 꿈을 떠올렸지만, 꿈으로 향하는 길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씨킴이 ‘커피’, ‘블루베리’, ‘카펫’, ‘버려진 오브제’ 등을 재료로 격정적이고 어두운 색채를 띠는 작업을 지속해 왔으며, 죽음, 고통, 인내 등의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작품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씨킴의 대형 회화들은 이러한 색에 대한 본능적 끌림과 충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업들이다. 무한함과 신비로움의 창을 여는 색의 존재는 오늘날 씨킴의 예술적 충동을 자극하고 그를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