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 Arario Collection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은 한국 근대 화단의 대가 운보(雲甫) 김기창(1914-2001)의 작품세계 전반을 소개하는 전시를 개최한다. 운보 김기창을 대가로 단언할 수 있는 지점은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활동 기간에 보여준 한국화의 현대화를 위해 시도한 여러 실험들과 그 결과물로서의 다양한 작품 연작들을 성공적으로 소개한 데 있다. 본 전시는 작가의 초기 1930년대 작업부터 후반기인 1990년대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시기별 작업 전반을 소개함으로써 운보의 미적 가치와 미술사적 의의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보려 한다.
운보 김기창은 8세에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이 마비돼 후천성 청각 장애인이 되었지만, 침묵의 고통을 극도로 예민한 시각적 심미성으로 발전시킨 한국 화단의 대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던 운보는 17세가 되던 1930년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에게 전통 산수화와 인물화 기법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시작으로 이후 최고상인 창덕궁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매년 수상했다. 이 시기 운보는 사실적인 구상 미술에 주력했다. 광복 이후에는 1946년 결혼한 여류 화가 우향(雨鄕) 박래현(1920-1976)과 함께 새로운 화풍 실험에 주력했다. 당시 일상을 그린 풍속을 다루면서 공간을 분할하고 재조립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입체주의적 작품과 반추상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1950년대 초반에는 신앙화 시리즈로 주목을 받았다. 예수의 출생부터 부활까지 총 30점의 연작으로 구성된 작품 <예수의 생애>(1952-1953)는 화풍뿐 아니라 배경, 복장, 인물 등을 모두 조선 시대로 변환시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50년대 후반에는 한자의 획을 자유분방한 운필로 표현하며 추상화한 문자도를 선보이며 한국화의 추상화 가능성을 시도했다. 더불어 이 시기는 운보의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가 크게 주목을 받았던 때이기도 하다. 유명한 군마, 투계, 부엉이 등 운보의 화조영모도는 활발하고 힘이 넘치는 필력과 과감한 구도, 그리고 섬세한 표현으로 인정받았다. 196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상을 시도했는데, 이 시기의 모든 실험과 시도들은 한국화의 새 가능성과 현대화를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6년 급작스럽게 아내와 사별한 후 운보는 오랫동안 매료되었던 민화 특유의 바보스러운 해학성과 서민의 소박한 삶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방식에서 영향을 받은 ‘바보산수’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에는 산 전면에 짙게 깔린 푸른색이 매력인 ‘청록산수’ 연작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 초반에는 봉 걸레를 먹에 찍어 대형 화폭에 그린 ‘점과 선’ 연작을 제작했다. 이처럼 운보는 청각 장애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미적으로 승화시켰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나가는 모습으로 오랫동안 존경과 사랑을 받아 왔다.
본 전시는 운보의 1930년대 초기 작품부터 1990년대 후기 작품들까지 모두 아우르는데, 첫 번째 전시장에서 영모, 화조, 풍속화의 대표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해 신앙화, 인물, 추상, 문자도, 바보산수, 청록산수 등 운보 시리즈의 대부분을 선보인다. 그중 운보의 영모도를 대표하는 특유의 거침없고 역동적인 필력과 말과 부엉이 각각의 표현에서 드러나는 기운생동한 묘사력과 그림 전반의 긴장감이 백미인 1950-60년대작 추정 <군마도>와 1972년작 <밤새(부엉이)>는 특히 눈여겨볼 작품이다. 청각장애로 인해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을 폭발적인 필력을 통해 그림으로 승화해 내는 운보의 영모도 중 단연 수작으로 인정받는 작품들이다. 운보의 화조도에서는 거침없고 비범한 구도와 섬세한 표현미가 돋보이는 1970년작 <비파도>와 1971년작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이 눈에 띈다. 광복 이후 새로운 화풍으로의 실험을 본격화하면서 입체주의적 경향을 선보였던 1953-1955년작 <노점>도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현대화를 모색하는 운보의 초창기 고민과 시도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보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이자 한국화의 현대화라는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고민했던 우향 박래현의 작품도 일부 소개된다. 전시에 출품된 1950년대작 <등나무와 참새>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이 부부의 대형 합작도인 4폭 병풍 작품이다. 우향이 먼저 등나무를 그린 뒤 운보가 참새를 그리고 글을 더한 작품이다. 우향의 힘차고 시원한 붓질과 과감한 구도가 돋보이는 등나무와 운보의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운보와 더불어 우향이 새로운 한국화를 모색하고 실현해 내던 시기의 대표작인 <불안>(1962), <작품>(1960년대)도 소개되는데, 당시 해외 미술계에서 유행하던 앵포르멜의 영향이 느껴지는 이 작품들에서는 대상성이 사라지고, 황색이나 적갈색의 추상성이 강조된 색면 덩어리와 매혹적인 번짐 효과가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운보 김기창의 70년 작품 인생은 도전과 실험의 연속이었다. 일찍 찾아온 화단의 인정과 이후의 안정적 상태에 안주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실험했다. 작가로서 사적인 미적 탐구뿐 아니라 한국화의 현대화와 세계화라는 시대적 문제의식을 저버리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본 전시는 이러한 지점을 주목하며 시작되었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운보의 70년 작품 세계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우향의 작품들을 통해 도전하고 실험하는 작가로서의 운보의 미적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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