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 레이: 배후의 조정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2017년 11월 23일부터 2018년 1월 7일까지 중국 작가 가오 레이(高磊, GAO Lei, b.1980)의 개인전 <배후의 조정자(Enzyme of Trial)>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2년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가오 레이의 개인전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국내 개인전이다.
바링허우 세대에 속하는 작가 가오 레이는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아이러니, 개인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주로 다뤄왔다. 그는 동물의 박제나 뼈 등 다양한 오브제를 결합하거나 열쇠 구멍을 통해 엿본 듯한 시점으로 찍은 사진매체를 활용한 작업으로 관람객들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또, 그의 조형 언어는 미니멀하지만 다층적인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은 고요해 보이는 표면의 이미지 뒤에 질서와 혼돈, 금욕과 희극, 유머와 엄격함이라는 상반되는 긴장감이 역설적으로 교차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그간 다뤄온 주제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가오 레이는 오브제와 그 ‘힘(energy)’ 사이의 대립적이고도 종속적인 관계를 특유의 재치로 묘사한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신작들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물의 배열을 통해 문명의 충돌, 소비사회, 억압과 회유, 그리고 세뇌와 이에 대립되는 개인의 의지(힘)에 대한 작가의 다각적인 탐구를 일종의 법정 게임과도 같은 형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제목 ‘배후의 조정자’와 동일한 제목의 작품은 형사 사건에서 경찰 심문에 흔히 사용되는 수단인 폭력과 회유, 그리고 세뇌에 관한 내용을 제시한다. 마치 증거물처럼 전시된 이 작품은 고압 전기볼트에 연결된 세라믹 절연체가 길다란 곡선 형태 목재의 양 끝에 붙어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전기볼트와 절연체는 심문 과정에서 자백을 받아내는 억압적 수단을 나타내며, 곡선 형태로 휘어진 나무막대는 그 과정에서 폭력과 회유에 세뇌되어가는 개인을 나타낸다.
이 작품 외에도 전시에 출품된 각각의 작품들은 작가가 연출한 거대한 ‘사건’과 ‘심문’의 과정에서 ‘단서’이자 자백을 촉발하는 효소(enzyme)의 역할을 한다. 마치 ‘배후의 조정자’와 같은 이 단서들은 전시에 긴장감을 더하고 의미를 증폭시킨다.
전시를 기획한 아라리오갤러리는 “이번 <배후의 조정자>전은 이전 열렸던 쑨 쉰의 개인전 <망새의 눈물>(2017.09.06 - 2017.11.15)에 이어 준비한 중국 바링허우 세대 작가 개인전”이라며, “가오 레이의 작품은 일견 차갑고 질서정연하면서도 모순적인 특징을 띤다. 이는 작가가 애정과 냉소, 유머를 동시에 담은 독자적 시각으로 관찰한 현대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전시는 중국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현상을 철학적 시선으로 분석하는 중국의 떠오르는 차세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