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 KIM
Past exhibition
Overview
그는 미술과 삶, 이상과 현실의 경계가 묘하게 뒤섞여 들어간 이 자화상들을 가지고 전시를 한다. 아직 그의 자기 찾기 항해가 끝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진행형의 모습들이다. 거전진과 표류가 지속될 것이고, 아직 가야 할 길도 멀지만, 그는 잠시 멈추고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배 위에서 자기 자신에게 건배(cheer up)를 권한다.
Press release
Ci Kim_ Sad Tiger’s Self Navigation 슬픈 호랑이의 고독한 자기 찾기 항해
이 세상엔 참으로 수많은 종류의 미술가상이 존재해 왔다. 종교, 특권계층, 혹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 이들도 있었고, 유토피아를 꿈꾸며 새로운 미술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이들도 있었고, 그 믿음이 다 헛되다며 모든 틀들과 힘의 구조들을 깨부수기에 열중한 행동주의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시대마다 달랐던 대표적 미술가상 사이사이 수많은 종류의 미술가들이 등장했다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는 자본과 권력, 온갖 실제들이 미술이라는 제도 안에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는 현실을 알만큼 알아버렸고 꿈, 이상, 미를 얘기하는 것에 매우 인색, 혹은 어색해졌다. 그리고 자유와 제도가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거대한 미술공장 안에서 미술가들은 현실적 문제들과 싸워나가기 바빠 보인다. 스타작가들은 암묵적으로 동의된 미술계의 ABCD공식 속에서 생산되고 평가되며 키워진다. 그런데 정작 우리에게 ‘진정한’ 미술가란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 같은 것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작가 아무개를 통해 어떤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일까.
여기 논란의 여지를 충분히 갖춘 한 사람의 작가가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세상이 그의 다른 모습을 보기에 바빠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쉽사리 주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30년 가까이 작품수집과 비즈니스를 해 오던 컬렉터/사업가이다. 이 두 가지 일에서 이미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제법 이뤄놓은 그는 ‘진정한’ 미술가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인생의 새로운 꿈을 설정했다. 오랜 세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갖가지 수식어와 이미지들을 벗고 오직 작품으로만(?) 평가 받는 미술가 말이다. 실상 미술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컬렉터들이 급기야 작품 활동(art practice)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미술계에서는 가끔 가쉽처럼 입에 오르곤 한다. 하지만, 그 중 이처럼 작정하고 프로세계의 작가들과 경쟁하는 전업작가가 되겠다고 돌변하는 경우는 거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금긋기와 편가르기로 구축되는 프로미술세계의 암묵적 금기사항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30여 년 미술계를 경험해온 그가 이를 모를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변신을 위해 필요한 건 머리로 아는 고정관념을 비웃어 줄 수 있는 여유, 구축된 나를 깨고 또 다른 불확실함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좋은 작품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라 굳게 믿어버렸다. 그렇게 작정한지 7년이 훌쩍 넘어 섰다. 포스트모던이 수 십 년 거듭되며 이미 미술실행의 보편적 플랫폼이 된 상황에서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자연스럽게 페인팅, 콜라주, 조각, 설치, 그리고 사진에 이르기까지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고 벌써 개인전도 수 차례 가졌다.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은 다양성(diversity)과 하이브리드(hybrid), 해체(deconstruction)와 분열(schizophrenic)등의 코드를 읽어내며 포스트 모던 팝 작가 정도로 평가해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리지널리티 문제가 운운되곤 했고 그의 작업활동은 배부른 취미 생활쯤으로 여겨지기 다반사였다.
*
그는 미술과 삶, 이상과 현실의 경계가 묘하게 뒤섞여 들어간 이 자화상들을 가지고 전시를 한다. 아직 그의 자기 찾기 항해가 끝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진행형의 모습들이다. 거기에는 자신이 잘라낸 귀에 붕대를 감고 어딘가를 멍하니 주시하는 듯한 고흐의 초상도 보이고, 실제 모델과 그려진 인물이 나란히 병치된 두 얼굴의 모나리자도 보인다. 그리고 변해가는 그와 함께 고독한 항해의 동반자가 될 배도 한 척 있다. 그가 작업실 근처 해안가에서 발견한 갖가지 버려진 물건들로 만든 배다. 물에 떠내려간 신발, 병, 자동차 시트, 심지어 냉장고까지. 마모되고 부식된 표면 가득 조개 껍데기들이 붙어있는 그것들은 실질적 쓸모(usage)의 측면에서 이미 생을 다한 것들이었지만 온갖 시간의 흔적과 함께 사람냄새, 바다 냄새를 풍기며 꽤나 예술적인 형태로 변모해 있다. 매일 하나하나 모은 쓸모 없는 쓰레기들이 망망한 바다에서 그를 지켜줄 든든한 동반자가 된 셈이다. 전진과 표류가 지속될 것이고, 아직 가야 할 길도 멀지만, 그는 잠시 멈추고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배 위에서 자기 자신에게 건배(cheer up)를 권한다.
이 세상엔 참으로 수많은 종류의 미술가상이 존재해 왔다. 종교, 특권계층, 혹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 이들도 있었고, 유토피아를 꿈꾸며 새로운 미술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이들도 있었고, 그 믿음이 다 헛되다며 모든 틀들과 힘의 구조들을 깨부수기에 열중한 행동주의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시대마다 달랐던 대표적 미술가상 사이사이 수많은 종류의 미술가들이 등장했다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는 자본과 권력, 온갖 실제들이 미술이라는 제도 안에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는 현실을 알만큼 알아버렸고 꿈, 이상, 미를 얘기하는 것에 매우 인색, 혹은 어색해졌다. 그리고 자유와 제도가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거대한 미술공장 안에서 미술가들은 현실적 문제들과 싸워나가기 바빠 보인다. 스타작가들은 암묵적으로 동의된 미술계의 ABCD공식 속에서 생산되고 평가되며 키워진다. 그런데 정작 우리에게 ‘진정한’ 미술가란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 같은 것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작가 아무개를 통해 어떤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일까.
여기 논란의 여지를 충분히 갖춘 한 사람의 작가가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세상이 그의 다른 모습을 보기에 바빠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쉽사리 주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30년 가까이 작품수집과 비즈니스를 해 오던 컬렉터/사업가이다. 이 두 가지 일에서 이미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제법 이뤄놓은 그는 ‘진정한’ 미술가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인생의 새로운 꿈을 설정했다. 오랜 세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갖가지 수식어와 이미지들을 벗고 오직 작품으로만(?) 평가 받는 미술가 말이다. 실상 미술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컬렉터들이 급기야 작품 활동(art practice)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미술계에서는 가끔 가쉽처럼 입에 오르곤 한다. 하지만, 그 중 이처럼 작정하고 프로세계의 작가들과 경쟁하는 전업작가가 되겠다고 돌변하는 경우는 거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금긋기와 편가르기로 구축되는 프로미술세계의 암묵적 금기사항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30여 년 미술계를 경험해온 그가 이를 모를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변신을 위해 필요한 건 머리로 아는 고정관념을 비웃어 줄 수 있는 여유, 구축된 나를 깨고 또 다른 불확실함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좋은 작품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라 굳게 믿어버렸다. 그렇게 작정한지 7년이 훌쩍 넘어 섰다. 포스트모던이 수 십 년 거듭되며 이미 미술실행의 보편적 플랫폼이 된 상황에서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자연스럽게 페인팅, 콜라주, 조각, 설치, 그리고 사진에 이르기까지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고 벌써 개인전도 수 차례 가졌다.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은 다양성(diversity)과 하이브리드(hybrid), 해체(deconstruction)와 분열(schizophrenic)등의 코드를 읽어내며 포스트 모던 팝 작가 정도로 평가해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리지널리티 문제가 운운되곤 했고 그의 작업활동은 배부른 취미 생활쯤으로 여겨지기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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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술과 삶, 이상과 현실의 경계가 묘하게 뒤섞여 들어간 이 자화상들을 가지고 전시를 한다. 아직 그의 자기 찾기 항해가 끝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진행형의 모습들이다. 거기에는 자신이 잘라낸 귀에 붕대를 감고 어딘가를 멍하니 주시하는 듯한 고흐의 초상도 보이고, 실제 모델과 그려진 인물이 나란히 병치된 두 얼굴의 모나리자도 보인다. 그리고 변해가는 그와 함께 고독한 항해의 동반자가 될 배도 한 척 있다. 그가 작업실 근처 해안가에서 발견한 갖가지 버려진 물건들로 만든 배다. 물에 떠내려간 신발, 병, 자동차 시트, 심지어 냉장고까지. 마모되고 부식된 표면 가득 조개 껍데기들이 붙어있는 그것들은 실질적 쓸모(usage)의 측면에서 이미 생을 다한 것들이었지만 온갖 시간의 흔적과 함께 사람냄새, 바다 냄새를 풍기며 꽤나 예술적인 형태로 변모해 있다. 매일 하나하나 모은 쓸모 없는 쓰레기들이 망망한 바다에서 그를 지켜줄 든든한 동반자가 된 셈이다. 전진과 표류가 지속될 것이고, 아직 가야 할 길도 멀지만, 그는 잠시 멈추고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배 위에서 자기 자신에게 건배(cheer up)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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