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 기계정원: 역방향의 컴포지션
금속 정원수들이 장소 안에 들어선다. 유일한 하나이자 복제된 여럿으로서, 각자의 주형에서 태어난 조각은 기계 문명의 은유이자 대량생산의 표상이다. 김병호의 기계정원은 조형의 기초 요소를 암시하는 금속 모듈을 재료 삼아 가꾸어진다. 문명사회의 질서정연한 풍경 속에서 구현 가능한 기하학적 미감을 탐구하는 일이다.
정원이란 인간이 길들일 수 있는 규모의 작은 우주다. 작가는 우거진 숲을 다듬어 인공 정원을 가꾸듯 기계 문명 특유의 조형적 가치를 탐닉한다. 시야에 가장 먼저 포착되는 것은 빼곡히 돋아난 빛점의 집합이다. 주위의 광원을 반사하는 찬란한 금속 타원구들이 보는 자의 주의를 사로잡는 탓이다. 시선은 총체적 전경으로부터 미시적 구조를 향하여 나아간다. 부풀어 오른 구체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지탱하는 선형의 기둥을 지나, 원자재인 금속의 표면을 가늠하는 눈길의 경로를 따라서다. 눈부신 전경 가운데 선과 면의 요소는 부피의 그림자 뒤로 감추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