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중국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인 쑨쉰(b. 1980)은 중국과 미국, 유럽, 아시아 각지의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쑨쉰은 은유적 이미지와 환상적 서사, 유려한 필획으로 점철된 특유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근작에 묘사된 서커스의 동물들은 동아시아 전통에 깃든 무속과 토속신앙을 연상시킨다. 마술적 분위기의 허구세계 속 의인화된 동물들이 강렬한 필치와 색채로서 구현된다. 관객을 응시하는 거대한 동물들과 그로부터 도망치는 작은 사람들, 텅 빈 극장의 생경한 장면은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시선 및 입장을 전복시키며 인간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 물음을 제기한다. 화면에는 짐승의 탈을 쓰고 의식을 행하는 샤먼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 소통을 중개하는 영매와 같은 존재이다. 쑨쉰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 짓는 샤먼의 역할에 예술가의 모습을 투영하여 본다. 눈에 보이는 작품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하고자 시도한다는 점에서다.
이번 전시는 쑨쉰이 국내에서 7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최근 작품세계의 중심 축을 이루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와 유화 및 목판 부조 원화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3개 층에서 선보인다. 일련의 출품작은 공통적으로 지난 2019년부터 제작해온 장편영화 〈마법성도(魔法星图)〉(2019-)¹의 세계관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전시에서는 영화의 제1장 ‘나찰국(螺刹)’²과 제2장 ‘고래국(鲸邦)’³ 풍경이 담긴 화면을 선보인다. 1층 벽면을 메운 영상작품 〈서커스 속 놀라운 꿈〉(2022-2024)은 독립적 서사를 지닌 단편영화인 동시에 ‘고래국’의 속편이다. 지하1층에 선보이는 ‘고래국’의 원화는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찬란한 색채가 돋보이는 유화로 묘사됐다. 반짝이는 레진으로 표면을 마감하여 개별 화면의 양감을 극대화했다. 3층에서는 보다 앞서 제작된 제1장 ‘나찰국’의 원전을 만나볼 수 있다. ‘나찰국’의 풍경은 나무를 깎아 만든 부조 위에 유채 물감을 채색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명확한 윤곽선과 찬란한 색채의 강렬한 대비가 특유의 환상성을 극대화한다.
쑨쉰은 1980년 중국 북동부의 광업도시 푸신에서 태어나 중국 문화대혁명 직후의 시대배경 속에서 자라났다. 성장기에 목도한 시대적 상황은 그로 하여금 세계사 속 사회정치적 현상, 문화, 기억 등의 주제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2005년 중국미술학원 판화과를 졸업한 뒤 2006년에 파이(π, Pi)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쑨쉰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2016년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의 기획전에 선보였고 2017년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상영되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현재 파리 퐁피두센터의 단체전 《중국: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2024-2025)에 참가 중이다.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미국), 해머뮤지엄(미국), M+컬렉션(홍콩), 탱크 상하이(중국), 아라리오뮤지엄(한국) 외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및 재단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¹〈마법성도〉는 주인공 샤오즈가 여섯 개의 환상적인 나라를 탐험하는 여행기를 장마다 나누어 담은 이야기로서 기획되었다. 현재 제1장 ‘나찰국’과 제2장 ‘고래국’이 완성을 앞두고 있으며, 각 장에 나누어 펼쳐지는 여섯 나라의 풍경은 목판 부조, 유화, 벽돌화, 세밀화 등 저마다 다른 기법으로 제작된 원화에 토대를 둔다.
² '나찰국’은 극한의 추위가 지속되는 북쪽에 위치한 폐쇄적인 나라다. 역사와 세계에 대한 개념이 없어 지도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도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60년에 한 번, ‘환상몽환제’라는 대규모 축제가 열리면 하늘에서 망각 가루가 흩날려 사람들은 모든 기억을 잃고 역사는 새로 쓰인다.
³ '고래국’은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때 고래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샤먼과 같은 존재이다.